개그맨 김정식의 희망레시피
KBS<젊음의 행진>으로 방송인의 삶을 시작한 김정식은 '밥풀떼기'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 최고의 개그맨이자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돌연 방송을 접고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장애인 사역에 전념하는 목회자가 되었다. 그밖에 한국콘서바토리 방송영상학과장, 한묵문화예술교육협회 대표이사 등으로 장애청소년들에게 음악, 미술, 영상을 가르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맡기자, 맡기는 수밖에! 늦은 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분명 하늘을 날 수 있는 두 날개가 있음에도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청년의 이름은 지훈이, 대학 재학 중 입대한 지운이는 전역을 앞두고 장갑차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말았다. 지난 일 년 간,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병원생활을 하던 지훈이가 혹시 다른 생각을 할까 염펴가 된 사촌 누이가 연락한 것이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장애인들과 지내면서, 함께 꿈을 만들고 그것이 큰 기쁨인 줄 알고 살아왔으나 이번 일은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지훈이와의 만남을 준비할까? 한 청년의 미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다. "주님 지혜를 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지훈이의 경우, 중도 장애인이었다. 지적 장애도 없었으므로 스스로 장애를 인정하는 과정부터 여러 변수들에 대해 점검해야 했다. 맡기자 주님께 맡기는 수밖에!
지훈이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 교회에 온 지훈이와 부모님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툴게 자신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지훈이는 남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동정하지 말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직접 바퀴를 굴리려는 모습에서 아직 마음의 문이 꽉 닫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휠체어 바퀴를 돌릴 수 있다면 장애가 아니란다 "뭐야? 장애인도 아니구만." 지훈이가 건넨 첫 마디였다. 이 말에 나 스스로 당황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 이렇게 만남을 시작해도 되는 건가? 에이, 주님께 맡겼으니 가자! 애써 태연한 듯 지훈이를 맞이했다. 평소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나와 지훈이와의 만남이 지작된 것이다. 그날, 계속해서 지훈이에게 말했다. "스스로 휠체어를 밀고 다닐 정도면 장애로 안 봐. 우리 교회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고, 팔 다리가 다 없어서 굴러서 오지 않으면 장애인이 아니라구, 너도 장애인을 위해 봉사 좀 해야겠다."
거침없이 대하는 나의 모습에 얼마나 당황 했을까? "지훈아! 열 받지, 진짜 화나지? 하지만 이젠 이게 현실이고, 너를 통해서 일어날 놀라운 일들을 나랑 같이 느껴보지 않을래? 후회나 한숨 같은 건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 눈만 껌벅거리던 지훈이가 겨우 입을 뗀다. "글쎄요. 이제 막 병원에서 일년 만에 나와서 아직..." "그래? 그럼 차차 생각하고 네가 좋아하는 건 뭐냐?" "사진 찍는 게 좋아요." "그거 좋다. 그럼 사진 공부를 해 보자. 전문적으로 배워보지 않을래?" "아니요. 어떻게 제가..." "일단 넌 시선이 남다르잖아. 다른 사람들이 보는 너의 세상 높이는 다르니까. 너밖에는 아무도 찍을 수 없는 작품이 나온다는 거지."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나님, 진짜 지혜를 주시느군요. 돌이켜보면 지훈이에게 가장 적절한 답을 준 셈이었다. 지훈이는 내 말에 잘 공감했다. 아니,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일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내가 학과장으로 있는 압구정 한국콘서바토리 방송영상 전공학과로 편입하고, '사진'과 '영상'을 공부하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앞으로 특수효과와 합성 등에 관한 영상편집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영상편집을 하는 일에 지훈이에게 없는 두 다리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사진에 담아낸 한 사람 나의 첫 번째 책에 지훈이가 찍은 사진을 꼭 넣고 싶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하던 날, 스스로 운전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튜디오까지 온 지훈이였다. 그리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를 찍은 지훈이, 방송 현역 시절에도 유독 사진 촬영을 싫어했던 나였지만 이날만큼은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나 스스로 이렇게 몸짓을 취해 보긴 처음이었다.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그의 모습에서 날개를 보았다. 긴장하는 가운데 조리게를 만져 초점을 맞추고, 이리저리 앵글을 바꾸느라 카메라를 든 팔을 움직일 때마다 분명 그것은 날갯짓이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눈은 피사체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높이에서 꿈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시선이었다.
작업 후에 본 그의 사진 속에는 김정식은 없고 사랑이 가득 담긴 목사 한 사람이 들어 있었다. 지훈이는 형제를 찎은 것이 아니라 내 맘속에 담겨 있는 그 사랑을 담아낸 것이다. 제자가 찍어준 나의 모습, 앞으로 나를 소개하는 모든 곳에 이 사진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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