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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화니_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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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01. 에이즈 환자의 대다수는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국민 여러분, 에이즈 환자 중 대다수가 남성 동성애자(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동성애자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는 있습니다. 국내 최대의 동성애자 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도 보고서에서 ‘에이즈 감염인 중 다수는 남성 동성애자’라고 겨우 인정은 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성 동성애자를 ‘에이즈 감염 위험 집단’으로 분류해 놨습니다. 그리고 공식 보고서에 “에이즈 감염이 남자 동성애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아예 ‘남성 동성애자 간 성 접촉이 에이즈의 주요 전파 경로’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에이즈 검사 활성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합니다.


02. 게이가 즐기는 항문성교는 에이즈 감염에 매우 취약한 위험행동입니다.

그렇다면 남성 동성애자들이 왜 에이즈에 쉽게 감염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독특한 성행위, 즉 항문성교 때문입니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타인에 전파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에이즈 감염인의 체액·혈액이 밖으로 튀어 나와 상대방의 체내에 곧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상온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죽기 때문이죠.

그런데 남성 동성애자들이 즐기는 항문성교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킵니다. 항문성교를 하다보면 항문 안쪽에 난 상처를 통해 에이즈 감염자의 정액과 혈액이 곧바로 침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내과 의사들이 보는 교과서인 ‘해리슨내과학’에는 “에이즈 전파는 삽입당하는 항문성교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게이 여러분, 동성애를 하루빨리 중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03. 그런데도 동성애자들은 ‘안전하지 않는 성행위를 하면 누구나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며 물타기를 합니다.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 혈액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은 1995년,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은 2006년 이후 보고 사례가 없습니다. 2013년 1,114명의 에이즈 신규 발생이 신고 되었는데 감염경로가 확인 된 것은 100% 성접촉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2014년 생존하고 있는 에이즈 감염자 8,885명 중 남자는 92.4%, 여성은 7.6%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자 감염자가 월등히 많은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현장에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감염내과 교수들은 “에이즈가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에이즈에 감염되더라도 8-10년간 증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이즈 검사를 받지 않으면 감염 사실조차 자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에이즈에 감염된 다수의 게이들은 자신이 감염된 사실도 모른 채 즉흥적인 성관계를 통해 제3자에게 에이즈를 감염시키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04. 에이즈 환자의 약값과 치료비 간병비 누가 낼까요?

  매달 수백만원에 달하는 에이즈 환가의 약값은 누가내줄까요? 에이즈에 감염된 게이들의 병원 치료비와 요양병원 치료비, 간병비용은 누가 부담할까요? 궁금하지죠. 놀라지 마세요. 약값부터 시작해서 검사비, 치료비, 입원비, 요양·호스피스 의료서비스 등 모든 의료비용을 100%국가제정으로 지원합니다.

  국민건강보험정책연구원 최영순 박사팀이 2009년 12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대형병원에서 사망 직전 1인당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에이즈가 1,245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돈 많이 드는 만성질환 1위가 에이즈라는 뜻입니다. 에이즈가 주로 남성간의 항문성교로 감염되고 있는데, 그 막대한 비용을 국민혈세로 전액지급하고 있는 셈입니다.

  시민 여러분, 남성 동성애자들이 ‘위험하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동성 간 성행위를 하다가 에이즈에 감염되면 선량한 시민들이 그 비용을 대신 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갑에서 의료비가 계속 나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동성애자들의 인권타령에 휘둘릴 것입니까.


05. 그런데 이걸 비판하면 성소수자혐오한다고 합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왜 혐오라고 매도합니까? 남성 간 성행위를 하다보면 변이 나오기도 합니다. 더러운 것을 더럽다고 비판하는 게 뭐가 잘못됐다는 말입니까?  남성 간 성행위를 하다보면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고 충고해주는 것도 혐오입니까? 건전한 비판, 충고, 조언과 혐오의 경계선이 있기나 한 것입니까?

  그리고 부도덕한 성행위를 하는 인원이 적으면 무조건 소수자(小數者)라는 말입니까. 소아, 노인에게 독특한 성적취향을 지니면 성소소소수자(性少少少數者)라는 말인가요?

국민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에이즈 감염 위기 앞에 높은 당사자와 가족을 걱정해서 해주는 조언은 혐오가 아니라 사랑의 충고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이걸 엉뚱하게도 혐오라며 낙인찍고 있습니다.



06.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인권은 진정한 인권이 아닙니다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인권’과 목숨 걸고 압록강을 건넌 탈북자의 ‘인권’은 정말 같은 개념일까요? 동성애자들이 요구하는 인권의 본질은 부도덕한 성행위를 권리로 인정하고 비판을 금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바꿀 때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합니다. 메르스 사태 가택치료를 받았던 시민들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회 공공질서와 보건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자유가 제한됩니다.

  한국은 사실상 동성애 자유국가입니다. 그런데도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부도적한 성행위를 인원으로 인정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해달라고 합니다. 에이즈를 확산시킬 위험성이 높은데도 군대 내 동성 간 성행위, 헌혈 등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음주운전자의 운전행위, 마약중동자의 마약흡입도 인권으로 인정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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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트 뷰티>는 현재 로마를 배경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한 남자, 로마 사교계를 주름잡는 핵심 인물 젭(토니 세르빌로)의 여정을 담는다. 이 영화로 “이탈리아의 차세대 거장임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라는 찬사를 받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그는 <그레이트 뷰티>를 통해 과거와 현재, 실재와 환상을 넘나들며, 쇠락한 현대 로마가 품은 허무함의 정서를 비집고 들어가 가려져 있던 순수한 아름다움의 시기를 상기 시킨다.

  영화 속에서 로마는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허울뿐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특히 상반된 두 로마의 모습을 교차시키는 오프닝 시퀀스는 신성함과 세속의 개념을 충돌시키며 완벽한 대립 구도를 이룬다. 아리아 선율과 하우스 뮤직, 파올라 분수 앞에서 노래하는 여성 성가대와 유리벽 안에서 춤추는 나체 여성, 로마 경관을 찍는 관광객과 환락 파티를 찍는 사진작가의 병치된 모습은 비슷한 듯 변질돼 몰락하고 있는 현대 로마의 실체를 체감하게 한다. 이는 주인공 젭의 허무한 시선과 맞물리며 그 여정 깊이 스며있는 삶과 죽음, 예술과 철학에 대한 뿌리 깊은 냉소 또한 경험하게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그레이트 뷰티’란 무엇일까? 감독은 영화 중간에 인용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허무함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작은 조각에 주목한다. 열여덟 살 나폴리에서 경함한 빛나고 찬란했던 첫사랑의 기억이다. 어쩌면 이 첫사랑은 현재 로마가 찾아야 할 ‘그레이트 뷰티’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젭의 여정과 함께, 다채로운 볼거리를 우아하게 담아낸다. 수로교 공원, 카라칼라 목욕탕, 스파다 미술관 및 파올라 분수, 특히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십자군 기사단장의 별장 등 과거의 영광을 품은 아름다운 유적들은 시종일관 감탄을 금지 못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기억 속 첫사랑이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일 수도 있고, 어떤 경험이기도 하다. 이는 근원적인 그리움이 돼 존재 깊은 곳에 뿌리내린다. 결국 삶을 끌어가는 원천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화양연화는 과연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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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은 보기 싫은 사람과도 더불어 사는 곳이고, 직장은 힘든 사람과도 함께 일하는 곳이고, 가정은 연약한 가족을 끝까지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모두 용서가 필요한 곳입니다.

  짐을 가장 빨리 정리하는 방법은 버리는 것이고, 관계를 가장 빨리 정리하는 길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대화는 내 확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가능하고, 진정한 용서는 내 상처를 낱낱이 드러낼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뜨내기도 단골 대접하면 단골이 되고, 단골도 뜨내기 대접하면 뜨내기 됩니다. 사람은 내가 대접하기 나름입니다.


  리에 머무르는 데 익숙해지기보다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 익숙해지면 서운한 일이 없습니다. 대접받기를 즐거워하기보다 대접하기를 즐거워하면 서운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동안은 쉼이 없고, 내가 어떤 대접을 받아도 괜찮을 때까지는 평안이 없습니다.

  모든 관계의 답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가 풀리면 수많은 문제가 저절로 풀립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화평케하는 것이 내가 옳은 것을 주장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관계가 화평케 되면 내가 주장하고자 했던 일이 내가 주장하지 않는 동안에 이뤄집니다.


  사하는 사람에게는 더 주고 싶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준 것도 되받고 싶습니다. 감사와 불평이 관계의 갈림길입니다. 서로 도우면 못할 일이 없고, 서로 헐뜯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서로 도우면 기쁨이고, 서로 헐뜯으면 일이 고통입니다.

  날마다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받을까를 생각하고 살면 어느새 남을 돕고 사는 형편이 됩니다.

  남을 탓하는 사람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일할 기회가 드물지만, 나를 탓하는 사람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일할 기회가 잣습니다. 그 만남의 기회가 일생의 갈림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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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여우,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구는 세상!


  이 영화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입소문에 혹해 나 역시 극장을 찾았다. 역시 소문대로 만족스러웠다. 덩치가 작은 토끼이지만 경찰이 된 주디와 교활하다는 편견이 있는 여우 닉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영화 속 배경인 ‘주토피아’ 그 자체였다.


  크기부터 습성까지 모두 다른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주토피아’는 이름처럼 이상적인 곳이다. 기차에는 문이 여러 개있어 덩치에 맞게 코끼리는 큰 문으로, 생쥐는 작은 문으로 드나들 수 있다! 키가 큰 기린을 위해 위쪽에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슬라이더가 있고 기차에는 기린이 앉을 수 있는 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사자와 양이 함께 일하고 토끼와 여우는 파트너가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획일적인 세상과 너무나 달라서일까,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주토피아의 모습은 참 매력적이었다.


  집에 와서 이사야서 11장을 찾아봤다. 사자와 늑대와 어린 양과 암소들이 함께 뒹구는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해됨도 없고 상황도 없는 나라가 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영화 속 주토피아와 비슷했다. 지금은 영화로밖에 볼 수 없지만 언젠가는 이 같은 세상을 만날 수 있길, 그저 영화 속 상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성경이 약속한 진짜 ‘주토피아’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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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어머니를 잃고 깊은 상실을 겪은 9살 소년 렌은 시부야 뒷골목을 떠돌던 중 동물들이 사는 또 다른 시부야 ‘주텐카이’로 흘러들어 간다. 그곳에서 렌은 곰의 모습을 한 괴물 쿠마테츠의 제자가 되고, 강해지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잘 알려진 호소다 마모루는 애니메이션의 최대 강점인 판타지적 세계 위에 사랑과 희생, 성장 등 ‘삶과 관계’의 소재를 탁월하게 부여하는 감독이다. 이번 <괴물의 아이>에서는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정면으로 맞서고자 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다.


인공 렌은 인간이자 금수의 세계를 침범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텐카이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치부된다. 스승인 쿠마테츠, 다른 동물 가족의 보호와 가르침 속에 몸은 점점 강해지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릴 적 친부모를 상실한 시간에 멈춰 있다. 렌의 불안정함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으면서 극대화되는데, 이는 강한 외면세계와 상처 입은 내면세계의 충돌로 드러난다. 여기서 충돌하는 두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시부야와 주텐카이다. 화려하고 밝은 겉 모습을 지닌 인간의 도시 시부야와 상상하기 어려운 낮선 동물의 세계 주텐카이는 인간의 양면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소년기에 『모비딕』을 읽으면서 진정한 괴물은 고래인지, 선장인지를 생각했었다는 감독은 극중 고래의 형상이 유령처럼 떠도는 시부야 밤거리를 보여 주고, 선과 악이 끊임없이 투쟁하며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바라보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두 세계를 의외로 쉽게 오갈 수 있게 설정한 것도, 결국 이 두 세계가 하나임을 의미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편 강력한 힘만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 믿는 두 외톨이가 함께 연습하고, 잠을 자며, 때로는 토닥거리면서 점차 미묘하게 닮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진전한 관계 맺음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랍게도 이 작품은 3D 애니메이션이 대세인 요즘 드물게 완성된 2D 애니메이션이다. 수작업으로 한 달에 150컷 이상 그려야 하는 육체적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감독은 “인류 마지막 2D 애니메이션은 내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래서 일까, <괴물의 아이>는 그가 그어낸 연필선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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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영화 <블랙>(Black)은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소녀 미셸의 이야기입니다. 그에게는 세상이 온통 블랙입니다. 어느 날 그에게 기적처럼 다가온 사하이 선생님, 그는 어둠 속에 갇힌 미셸을 빛의 세계로 조금씩 이끌어 냅니다. 그의 헌신적인 사랑은 미셸에게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영혼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40년, 미셸에게 영혼의 빛을 불어넣어 준 사하이 선생님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미셸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역시 온 세계가 온통 블랙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영혼이 이번에는 미셸을 통해서 되살아나게 됩니다.

미셸은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졸업식에 모인 청중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맹인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그분을 보거나 듣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만졌고 그분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나는 블랙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아요. 그것은 성취예요. 여러분이 입은 검은 가운이 성취입니다.”


  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미셸은 바디매오보다 더 비참한 현실의 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의도하신 미셀의 운명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셀은 하나님의 깊은 사람과 긍휼과 자비 가운데 이슨 그의 삶을 찾아냈습니다. 미셀의 고통에는 주님의 고통과 주님의 승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고통 가운데 있는 주님의 승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주님의 승리를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삶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고 그의 능력으로 살아가면서 희망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빛의 세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보게 되는 우리 자신의 운명과 세상은 질병, 실패, 고통, 죽음이 극복된 새로운 현실입니다. 어둠이 있는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살아가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도록 자리를 비워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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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와 증오로 어지러운 세상에 진저리가 난 사람이 있었따. 사람들의 행패가 그치지 않는 데 지쳐버린 그는, 정의가 존중받고 평화가 실현되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주변 사람들에게 기회만 있으면 털어 놓았다. 밤마다, 하늘에 닿아 있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땅을 꿈꾸었다.

  느 날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간단한 보따리를 챙기고 가족과 이별하여 꿈에 그리던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났다. 하루 종일 걸어 해가 질 무렵, 길에서 조금 벗어난 숲 속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빵을 먹고 기도를 마친 다음, 내일도 가던 길을 계속 가려고 구두코를 그쪽으로 놀려놓고는 자리에 누웠다.

  날 밤, 그가 잠자고 있을 때, 장난꾸러기 하나가 하필 그리로 지나다가 나그네의 구드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하여 구두코 방향을 백팔심도 돌려놓았다.

이튿날 아침, 나그네는 잠에서 깨어 기도를 마친 다음 남은 음식을 먹고 구두코가 가리키는 쪽으로 길을 떠났다. 그날도 하루 종일 걸었다. 이윽고 해가 질 무렵, 멀리 하늘에 닿아 이는 이상향이 나타났다.

  가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도 않았고,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그는 낯익은 거리로 들어가 어느 집 문을 두드렸고, 거기서 낯익은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정의롭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졌군요? 이야말로 진짜 기적이 아닙니까? 주님, 저한테서도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쟁과 아우성으로 범벅이 된 세상 한복판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는 들꽃 한 송이처럼 친구를 위하여 제 목숨 내어놓는 눈물겨운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주님 제 눈을 당신 눈으로 바꿔 주십시오. 여기 아닌 저기 어디에 낙원이 있다는 착각에서 저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늘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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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대연 목사님의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라는 글을 읽고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너 없으니까 일이 안 된다.”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기분 좋았던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없으면 공동체가 무너질 정도로 공동체를 나에게 의존하게 만든 것은 나의 이기적인 만족일 수 있습니다.

  “너만 있으면 된다.”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아주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독재를 하고 있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야! 너 천재구나!”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풍부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코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시키는 대로 잘하네!”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말 잘 듣고 착한 천사와 같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새 생각을 하지 못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늘도 진정한 리더로 나아가기 위해서 저는 칭찬을 다시 한 번 새겨듣습니다. 우리는 참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다 주님으로부터 온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악한 영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만큼 악한 영의 역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혼란케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스스로 속고 사는 것입니다. 악한 영에 휘둘려 살면서도 자신은 성령으로 말하고 행한다고 여기는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평소에 성령님의 역사를 잘 분별하여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원망, 불평, 미움, 두려움, 염려가 있으면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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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참으신

십자가를 참으신 어린 양 예수 내 죄 씻어주시고 구속하셨네
어둠을 물리치신 세상의 빛 예수 영광의 빛 비추사 자유케하시네

예수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예수 하나님의 값 없는 은혜
예수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주 같은 분 없네 주께 영광 돌리세 주께 영광 돌리세

예수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예수 하나님의 값 없는 은혜
예수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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